구기현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나의 취미는 러닝, 사주, 포커다. 이 세 단어를 한 문장에 나열하고 나니 나도 잠깐 멈칫했다.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이 사주를 보고 포커판에 앉는다. 공통점이 뭔지는 나도 처음엔 몰랐다.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하다. 셋 중 어느 것도 내가 고른 게 아니라는 것. 어쩌다 보니 손에 쥐어져 있었다.
내가 어릴 적 대퇴부를 골절했을 때 주변 어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너는 앞으로 조심히 살아야 해.“ 그 말은 꽤 오랫동안 내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달린다. 거창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골절 이후 다리 근육이 약해져 재활 차원에서라도 운동을 무조건 해야 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헬스장은 한 달에 6만 원, 수영은 8만 원, 클라이밍은 — 잠깐, 이건 그냥 넘어가자.
통장 잔고와 운동 욕구 사이의 좁은 교집합을 찾다 보니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러닝. 운동화만 있으면 된다. 이미 있다. 무료다. 완벽하다.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시작했고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지금은 혼자 트랙을 돌고 한강변을 달린다. 한때 걷지도 못하던 다리로 한강 바람을 맞으며 달리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페이스 같은 건 솔직히 좀 부차적인 문제다.
러닝 다음 취미도 시작된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시 돈 문제였다. 1년 전 용돈이 늘 아슬아슬했다. 뭔가 부수입이 될 만한 게 없을까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생각이 스쳤다. 사주. 잘 봐주면 밥값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고 사주는 어릴 때부터 멀리하라 배웠지만 용돈 벌이 앞에서 그런 건 잠시 접어뒀다.
도서관에서 입문서를 빌려 읽기 시작했고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결론부터 말하면 용돈 벌이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주 자체가 재밌어졌다. 신촌 카페 한 편에서 친구 사주를 봐주다가 “야, 이거 맞는 것 같은데?“라는 소리를 들을 때 그 묘한 쾌감이란. 돈은 못 벌었지만 취미 하나를 얻었다.
그리고 요즘은 포커를 시작했다. 한 달에 두 번 친구들과 홀덤을 친다. 처음엔 그냥 끌려갔다. “야, 그냥 와서 머릿수만 채워줘.“ 그 말을 믿은 게 잘못이었는지 벌써 단톡방에서 “이번 주 누구 됨?“을 확인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상대의 베팅 패턴을 읽고 포지션을 계산하다 보면 이게 생각보다 꽤 정교한 심리전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러닝이 몸을 읽는 취미라면 포커는 사람을 읽는 취미다. 사주와도 어딘가 닿아 있다.
세 가지를 나란히 놓고 보니 공통점이 보였다. 기대가 없었다는 것. 러닝은 어쩔 수 없이 시작했고 사주는 용돈 벌 욕심으로 들여다봤고 포커는 친구한테 끌려갔다. 반면 각오를 단단히 하고 시작한 것들 중 기타는 서랍 속에 스케치북은 책장 뒤에 펼쳐둔 책은 한 달째 같은 페이지에 있다. 기대가 클수록 빨리 포기했고 기대가 없을수록 오래 남았다. 어쩌면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너무 단단히 쥐려 하면 부러지고 손을 살짝 펴고 있으면 뜻밖의 것들이 내려앉는다.
포커 용어로 치면 사회에 나가기 전 청춘인 우리들은 아직 플롭(flop, 처음 공개되는 세 장의 공유 카드)도 열기 전에 패만 들고 앉아 있는 상황이다. 지금 손에 쥔 패가 영 시원찮아 보여도 보드가 열리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그림이 완성될 수 있다. 인생은 결국 우연의 요소들이 겹쳐 만들어진 집합이고 나의 삶도 그러했으니 한번 기대해봐도 괜찮을 것 같다. 혹시 강처럼 흘러가다 보면 인생의 river(리버, 마지막으로 공개되는 다섯 번째 카드)에 행운이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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